본문 바로가기
인간관계

돌하르방의 특징 유래 및 유형 현대의 돌하르방

by 파란고리 2023. 7. 20.

1. 돌하르방의 특징


제주도에서 장승을 대신하여 세워진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아 있는 향토자료를 보면 주로 성문의 입구나 길의 입구에 세운 것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다만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한데, 이를 토대로 본래 남근석을 세워둔 것이 조선시대로 오면서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사람 모양의 돌하르방으로 고쳤던 거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뒷모습도 그냥 제대로 모자 모양을 한 것도 있어서 남근석설을 완전히 신뢰하긴 힘들다.
제주도에서 많이 나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구멍이 뽕뽕 뚫린 것이 특징이다. 그러한 현무암의 특징 때문에 투박하면서도 정감 가는 모습이 인상적. 제일 큰 건 사람 키의 2배는 된다고 한다. 또한 돌하르방의 종류는 손의 위치에 따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지는데,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文人)을 상징하고 왼손이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무인(武人)을 상징한다. 양손이 평등한 돌하르방은 평민 또는 근래에 만들어진 것

 

2. 유형 및 유래


2016년 기준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돌하르방은 총 47기로 제주시에 23기, 대정현(현 서귀포시 서부)에 12기, 정의현(현 서귀포시 동부)에 12기이며 제주도에 현지에 있는 돌하르방은 45기이다. 제주목에 위치했던 돌하르방 2기가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졌기 때문. 이 3곳의 읍성에 세워진 돌 하르방들은 모양새가 각각 다르다.

  • 제주목 돌하르방 :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형태로, 다른 하르방들에 비해 높이가 더 높고 얼굴의 주름이 가장 많고 할아버지의 모습을 띄고 있다. 사진은 제주대학교 박물관 앞에 전시된 돌하르방.
  • 대정현 돌하르방: 다른 돌하르방들에 비해 순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동그란 눈이 부각되어 있다.
  • 정의현 돌하르방: 가장 단순한 형태로 다른 하르방들은 기본 틀 외에도 신체나 표정 등에 선을 새겼지만, 정의현 돌하르방은 딱 필요한 부분만 조각한 느낌이 강하다.

유래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히 언제, 어떻게 이 돌하르방이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보통 학계에서는 4가지 가설들이 논의된다.

  • 북방 기원설: 몽골로부터 전파되었다는 학설. 몽골의 훈촐로오와 연관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 학설이다. 하지만 훈촐로오는 돌하르방과 달리 의자에 앉아 있는 석상들도 많고, 손에 식기를 들고 있는 석상도 있는 등 세세하게 따져보면 다른 점도 많다. 제주도가 과거 원나라의 지배 하에 있어 그들이 이를 전파한 게 아닌가 하기 쉬우나 정작 학자들은 이 몽골에 있는 석상들은 몽골인이 세운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이전에 북방지역에서 활동했던 스키타이 민족이 세운 것으로 본다. 후술 할 우실하 교수도 이 가설에 기초하여 돌하르방이 요하 문명의 석상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외로, 제주 내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 남방기원설: 남태평양에 있는 발리섬의 석상문화가 해류를 타고 제주도까지 전파되었다는 설로 대만에서부터 시작된 폴리네시아계 민족들의 대항해 과정에서 제주도가 영향을 받았으리란 견해가 있다.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도 양손이 있고 갓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어 유력한 학설 중의 하나다. 제주도가 선사시대 당시 중국 산둥반도, 한반도 남부, 일본 열도와 더불어 원(原) 오스트로네시아족의 거주지 중 하나로 추정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가 정작 다른 거주지들에서는 사라지고 제주도에만 남아 보존되었을 수 있다. 1세대 고고학자 중 하나인 김병모 교수도 이 가설을 주장하였다
  • 한반도 본토 유래설: 조선 중 후기, 한반도 남부 지방의 석장승(벅수) 문화가 제주도를 통해 건너가면서 변형된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벅수는 돌로 만들어졌다는 것만 빼면, 돌하르방과 다르게 일반 나무로 만든 장승처럼 특이한 모자와 양손이 없어서 유력하게 보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 자체생성설: 말 그대로 제주도에 거주하던 고대인들이 어떤 문명의 영향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형태로 제작했다는 가설.
그 외에 다른 주장으로 2014년 10월 29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최근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시 젠핑현 젠핑박물관의 전시물 가운데 제주 돌하르방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은 요나라 시대는 석인상을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우 교수는 "그동안 여러 주장에서 근거로 제시된 석인상들이 제주 돌하르방과 비슷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번 요대 석인상처럼 '똑같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하면서 "제주 돌하르방과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닮은 요대 석인상이 발견된 이상 최소한 그 외형은 몽골 이전의 요나라 시대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마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기사 및 비교 사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위 북방 기원설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우실하 교수가 홍산문화를 한국사와 결부시키는 선봉장 격인 인물이라는 점은 참고하자. 이 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항공대 사회학 교수이다.

3. 현대의 돌하르방


제주도에 위치한 카카오 본사에는 돌하르방이 노트북을 들고 있다. 회사명이 'daum', 'daumkakao', 'kakao'로 바뀜에 따라 노트북에 새겨진 문구도 이에 맞추어 바뀌었다. 제주도 난타호텔 정문에 있는 돌하르방은 칼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유명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애리조나주에 각각 한미우호증진의 표시로 기증되기도 했다. 사진은 애리조나주의 세도나에 세워진 돌하르방, 그 옆에 있는 것은 세도나의 상징 코코펠리.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 근처에도 돌하르방이 있다. 2009년 제주시와 독일 로렐라이시의 친선우호를 기념하기 위해 제주시가 제작, 기증해서 세운 것. 답례로 로렐라이시는 2010년에 로렐라이 요정상을 제작하여 기증했는데, 제주시 용담 해안도로에 위치한 어영공원에 있다.
일본 아라카와구의 구청사 앞에도 돌하르방이 둘 있다. 앞에 놓인 팻말에는 2006년에 제주시와 아라카와구가 우호도시 제휴를 맺은 기념으로 제주시가 보낸 것이라 쓰였다.

4. 기타 사항

남아 선호 사상이 심하던 시절,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기를 낳을 때 남자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미신인 줄은 알지만 재미삼아, 또는 정말 진지하게 아들을 바라며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돌하르방의 코 부분을 부수어 가루내어 물에 타마시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돌하르방은 코가 닳거나 없어진 것들도 있다제주도 본토의 관광상품으로 '귤하르방' 이라는 제품군이 있다. 델리만쥬와 유사하지만 이름처럼 작은 돌하르방의 특색있는 모습에, 속에는 귤로 만든 필링이 들어있는 만쥬 형태와, 돌하르방 모양의 병에 귤이나 한라봉, 망고 등의 주황색 과일, 채소로 만든 주스가 들어있는 음료 형태가 있다.
이 중 만쥬 쪽이 델리만쥬와 달리 너무 달거나 느끼하지 않은 적당한 단맛에, 무엇보다도 미니 돌하르방이라는 아주 귀여운 모습으로 인기가 많은 상품이다.친숙한 이미지지만 공포물에도 낮은 빈도로 등장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90년대 중후반 인기리에 방영된 테마게임의 한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 김진수는 마을 노인의 경고를 무시하고 신성시되는 돌하르방을 건드렸다가 귀를 부러트린다. 그후 연인이 무언가에 씌인듯 김진수의 귀를 자르려는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의 호통을 듣는 등 제대로 동티가 난다. 결국 자신의 죄를 뉘우친 김진수는 귀를 다시 돌하르방에 갖다놓아 용서를 빌면서 해당 화는 마무리된다.제주도에는 돌하르방과 비슷하지만 그 크기가 매우 작고 귀여우며, 무덤 근처에 산담과 같이 놓는 동자석이란 것도 있다. 그러나 많이 절도당해, 현재 제주도에서는 이를 엄격히 단속하고 있다. 제주도 출입시 석물을 함부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